1. 영화와의 만남
이태원이 한참 핫플 중에 핫플이던 2009년, 이태원의 낭만을 가득 품은 청년들의 소모임이 되게 많았다. 나는 종종 옥탑방 네트워크 모임에 참석했다. 이태원 빌라들 중에 옥탑에 오르면 저 건너 강이 보이는 곳이 많았다. 좋은 고급 맨션이나 아파트가 아닌 세월을 직격탄으로 맞아 이겨낸 빌라 옥탑에서 알조명과 패브릭을 조금만 꾸미면 근사한 모임공간이 탄생하곤 했다. 나는 옥탑 영화모임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그때 같이 모여서 본 영화가 이 락앤롤보트였다. 포스팅을 위해 정보를 검색하다보니 한가지 재밌는 통계가 있었다. 다음 영화 페이지에 영화를 검색하면 누적관객 245명이다. 아니, 그 정도는 아닌데! 생각보다 더 재밌는데 말이다. 그때는 이태원에 있는 내 자신이 매우 자유로운 상태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영화가 더 감명깊었는지도 모른다.
2. 영화의 배경
영국은 라디오 상업 방송을 시도해 음악을 대중화하는 데 앞장섰지만 음악 민주화가 이뤄지기까지는 쓰린 투쟁의 역사를 거쳐야 했다. 60년대는 미국식 팝, 로큰롤이 유행하던 때이다. 공영 방송국인 영국의 BBC 채널은 라디오 방송의 제약이 심했다. 어떤 음악을 틀 것인가에 대한 규제를 받았던 것이다. 영국의 젊은이들은 미국음악을 듣고 싶어도 공영방송에서는 이런 음악을 틀지 못하게 했다. 여기서 자유를 위한 갈망이 행동으로 표출된다. 영국과 서유럽 사이 공해에서 해적선 방송(Pirate Radio)이 등장한 것이다. 이 방송은 당연히 영국의 방송허가를 받은 것이 아니다. 허가를 받지 못한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영화는 실화인 이 사건을 소재로 제작되었다. 66년 1월 해적 방송을 하는 미 아미고(Mi Amigo)의 모습을 게티이미지뱅크에서 찾아볼 수도 있다. 그 배에서 해적 대표방송인 '라디오 캐롤라인'이 방송됐다. 배와 방송을 경험한 전문가가 모여 하루에 몇 시간씩 로큰롤 팝송을 방송했다. 해적선 숫자도 늘어나 청취자는 영국에서만 1,000만명이라는 통계도 있다. 방송국의 음악 선곡 독점권에 도전했고 운영비는 상업 광고로 충당했다. 정보 신문에 나던 광고가 바다에서 육지로 전해졌다. 영국 공영방송이 상업광고 방송을 허용하지 않던 시절이기 때문이다.
3. 영화 줄거리
1960년대 북해 한복판에 떠있는 해적 방송선인 <락 호>에는 자유롭게 음악을 틀고 싶은 DJ와 선장이자 방송국 운영자인 쿠엔틴은 영국의 감시를 피해 24시간 락 음악을 송출한다. 인기는 날로 더해져 배로 사연을 보내거나 팬레터를 주기도하고 팬들이 찾아오는 일도 많았다. 방송이 인기를 끌게 되자 영국 당국은 저지를 위한 방법으로 배를 망가트릴 계획을 세운다. 전복될 위기에 처한 <락 호>가 사라진다면, 그냥 배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모두의 작은 유토피아, 실존하는 희망 자체가 무너지는 것이다. 이 상황을 각자 담백하고 유머러스하게 받아들인다.
4. 영화 속 한마디
배가 가라앉고 있는 상황에서 마지막 방송을 하는 DJ가 말한다. " 이 늙은이들은 오늘 죽을지라도 정말 중요한건 앞으로도 영원합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앞으로 만들어질 좋은 노래들을 우리가 틀지 못한다는 거죠. 하지만 멋진 노래는 분명 또 탄생합니다. 사람들에게 불려지고 세상을 경이로 물들이겠죠." 라고 말이다. 그들이 해적선을 타게 된 것은 독점하고 삐뚤어지려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사랑할 뿐이기 때문이었다. 다른 DJ도 말했다. "긴 곡을 들려드리죠. 노래가 끝났을 때도 살아있었으면 좋겠군요." 끝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근사한가. 억지로 붙잡고 늘어지지 않고 지금 여기서 최선을 다했다면 끝도 미련없이(미련이 혹시 있더라도) 받아들인다는 말이 떠오르는 영화이다.
5. 총평
음악은 사람을 살리기도, 죽이기도 한다고 한다. 음악의 힘은 매우 강력하다. 젊은날 듣던 노래가 흐르면 십수년이 지나도 그때 내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어떤 생각을 했는지가 툭툭 떠오르기도한다. 신날 때에는 흥을 더해주고 슬플때는 누구보다 절절하게 옆에서 위로해준다. 우리 시대의 음악은 어떻게 하면 보다 가깝게, 더 밀접하게 상시대기할 수 있을까의 문제였다. CD플레이어가 MP3가되고, 이제 폰 하나로 전 세계음악을 무제한으로 들을 수 있다. 하지만 60년대 영국은 하루 중 45분만 대중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자유를 잃은 시민이 뿜어내는 용기는 누구도 감당할 수 없었다. 금지하는 것을 금지한 사람들의 이야기. 연휴나 주말에 틀어놓고 스낵을 먹으면 그렇게 행복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