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속 된장, 식탁 위의 간장, 일식집 미소된장국, 주말의 막걸리 한 잔, 스테이크에 뿌리는 미림… 이 모든 것의 출발점이 하나라는 거 알고 계세요? 바로 누룩(코지)입니다. 같은 곰팡이균이 어떻게 이렇게 다른 맛들을 만들어내는 건지, 그 과학을 오늘 제대로 정리해드립니다.
누룩이 발효식품을 만드는 기본 원리
누룩균이 만들어낸 효소들은 재료에 따라 다르게 작용합니다.
- 아밀라아제: 쌀·보리·밀의 전분을 포도당·맥아당으로 분해 → 단맛과 알코올 발효의 재료 제공
- 프로테아제: 콩·육류의 단백질을 아미노산으로 분해 → 감칠맛(글루탐산, 이노신산) 생성
- 리파아제: 지방 분해 → 복잡한 향미 성분 생성
그런데 왜 술이 되기도 하고 장이 되기도 하냐고요? 핵심은 '조건'입니다. 수분이 많으면 효모가 활성화되어 알코올 발효가 일어나고, 소금이 많으면 효모 활동이 억제되고 효소만 천천히 작용해 장류가 됩니다. 같은 출발점, 다른 조건, 전혀 다른 결과물이에요.
된장·간장 (한국)
콩을 삶아 메주를 만들고, 여기에 누룩균과 다양한 자연균이 자랍니다. 이 메주를 소금물에 담가 발효시키면 액체(간장)와 고체(된장)로 나뉩니다. 핵심은 누룩의 프로테아제가 콩 단백질을 분해해 글루탐산 등 감칠맛 아미노산을 만들어내는 과정입니다. 한국 된장은 자연균의 복합 발효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일본 미소보다 맛이 더 강하고 복잡합니다.
식품과학 측면에서 된장의 감칠맛은 MSG(글루탐산나트륨)의 자연 형태인 유리 글루탐산에서 비롯됩니다. 된장 100g에는 약 300~500mg의 유리 글루탐산이 포함되어 있어, 화학적으로 첨가한 MSG와 동일한 분자지만 발효라는 과정을 거쳐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입니다.
미소·쇼유 (일본)
원리는 된장·간장과 동일하지만, 황국균(A. oryzae) 단독 배양 코지를 사용한다는 점이 다릅니다. 일본의 쌀 코지 미소는 단맛이 강하고 섬세하며, 보리 코지 미소는 풍미가 깊고 짭니다. 콩 코지 미소는 가장 진한 맛을 냅니다. 이처럼 코지에 사용하는 재료에 따라 수십 종의 미소가 만들어질 수 있어요.
쇼유(간장)는 코지 처리한 콩과 밀을 소금물에 담가 6개월~3년 발효시킵니다. 발효 기간이 길수록 아미노산 분해가 더 많이 일어나 복잡하고 깊은 맛이 납니다. 고급 쇼유는 3~5년 발효시키기도 해요.
막걸리·사케 (한·일 술)
막걸리와 사케의 발효 과정을 학술적으로 보면 '병행 복발효(竝行複醱酵, Parallel Double Fermentation)'라는 독특한 방식입니다. 일반 맥주나 와인은 당화 후 알코올 발효를 순서대로 거치지만(단계적 발효), 막걸리와 사케는 누룩의 당화와 효모의 알코올 발효가 동시에 일어납니다. 이 방식은 알코올 농도를 높이면서도 효율적인 발효를 가능하게 합니다. 실제로 이 과학적 원리를 연구한 '원료 쌀과 누룩의 처리 및 첨가방법이 다른 전통주의 발효특성 비교'(한국식품과학회지) 등 관련 논문이 다수 존재합니다.
미림·식초·아마자케 — 덜 알려진 누룩 파생물들
- 미림(미린): 찹쌀 코지를 알코올에 담가 당분을 용출시킨 것. 설탕보다 복잡한 단맛과 광택 효과 때문에 요리에 필수적.
- 아마자케(甘酒): 쌀 코지를 50~60℃에서 6~8시간 발효시킨 음료. 알코올이 거의 없고 자연적인 단맛이 강해 '마시는 수액'이라고도 불림. 비타민 B군과 아미노산이 풍부.
- 발효 식초: 코지로 만든 술에 초산균을 더해 한 번 더 발효. 쌀 식초·사과 식초 등 다양한 종류 존재.
감칠맛의 과학 — 우마미(Umami)
1908년 일본의 이케다 기쿠나에 교수는 다시마 국물에서 기존의 단·짠·쓴·신맛과 다른 독특한 맛을 발견하고 '우마미(旨味, 감칠맛)'라고 명명했습니다. 이 맛의 주성분이 바로 글루탐산이에요. 누룩의 프로테아제가 단백질을 분해할 때 만들어지는 글루탐산이 우마미의 핵심입니다. 된장, 간장, 미소, 사케에 모두 이 감칠맛이 있는 이유가 여기 있어요. 세계 5대 기본 맛 중 하나인 우마미, 그 근원에 누룩이 있는 겁니다.
참고문헌: 박현진 외, 「원료 쌀과 누룩의 처리 및 첨가방법이 다른 전통주의 발효특성 비교」, 한국식품과학회지 / 이케다 기쿠나에, 「새로운 조미료에 관하여」,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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